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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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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에 예배하는 마음가짐

불기 2563년 12월 01일 일요가족합동법회 법문입니다
법사 : 대한불교조계종 법장사 회주큰스님

  [불상에 예배하는 마음가짐]

불상 탑의 유래
불상이나 탑, 경전이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유래와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부처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유훈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대반열반경󰡕에는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습니다.

출가자는 법과 계율에 의지하여 수행하라
“비구들이여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아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된다. 법(진리)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할 것으로 삼아라.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너희들 출가 수행승은 여래의 장례 같은 일에 상관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진리를 위해 게으름 없이 정진하여야 한다. 장례는 독실한 재가신도들이 맡아서 집행해 줄 것이다.”

부처님의 장례나 사리수습과 불탑조성은 재가자가
“큰 길 사거리에 여래의 탑을 조성해야 한다. 거기에 화환이나 향이나 향가루를 올리거나 절을 하거나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는 자들에게는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중략)...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런 이익이 있기 때문에 여래·아라한·정등각의 탑은 조성할 만하다.”

  부처님께서는 출가한 제자들과 재가신자들이 해야 할 일을 분별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든 번뇌를 끊고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출가수행승들에게는 오로지 부처님께서 남기신 가르침과 계율에 의지하여 자기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는 해탈도(解脫道)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재가자들을 위해서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불탑을 섬기고 기도하면서 청정한 믿음을 지님으로써 현세의 이익과 행복을 얻으며, 죽어서는 천상세계에 태어나게 하는 생천도(生天道)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 부처님 입멸후 드로나 바라문의 중재로 팔대대탑 건립
- 입멸 200년후 아쇼카 왕의 8만 4천탑 조성
- 불상 조성은 입멸 200년 후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후
- 대승불교 흥기 후 多佛 및 多菩薩 조성

불상을 바라보는 마음가짐 - 북주 무제와 혜원스님의 폐불논쟁
그러면 이러한 불상과 존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와 관련하여서는 4세기 중국 남북조 시대의 고승인 정영사 혜원스님과 북주 무제와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이후, 정치적, 사상적인 이유로 여러 차례의 불교탄압이 자행되었습니다. 이를 ‘폐불(廢佛)’ 또는 ‘파불(破佛)’이라고 부릅니다. 그 중 가장 피해가 막심하였던 것이 위진남북조 시대 북주(北周)의 제3대 황제인 무제(武帝) 우문옹(宇文邕)에 의한 것이었는데, 정복사업을 위한 국가재정 확충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그는 당시 정권의 실세였던 우무호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이후, 불교계를 대표하는 500여명의 승려들을 궁궐로 소집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유교의 6경은 세상에 필요한 가르침이다. 또한 진짜 부처는 형상이 없고 태허(太虛)에 있어서,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널리 찬탄하여 도상(圖像)이나 탑을 숭상하게 되었다. 그것을 만들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실로 그러한 일은 없으니 어찌 은혜가 있겠는가.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것을 믿고 재물을 쏟아 붓고, 널리 절과 탑을 건립하고 있으니 그저 헛된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릇 경전과 불상은 남김없이 폐기하여 없애야 한다. 또한 부모의 은혜가 깊은데도 승려들은 부모를 받들지 않으니, 그러한 잘못을 국법이 어찌 용인하겠는가. 승려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효를 다하여라. 짐의 생각은 이러하다. 여기 앉아 있는 대덕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는 대승통(大僧統)인 법상스님을 비롯하여 500여명의 스님들이 생사여탈권을 거머쥔 황제의 서슬퍼런 발언에 고개 숙이고 있을 그 때, 혜원스님은 대중들 사이에서 앞으로 나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짜 부처는 형상이 없다고 하신 것은 진실로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귀와 눈이 달린 중생들은 경전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불상을 통해 참된 마음을 드러낼 수가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모두 없애라고 한다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에 무제는 ‘텅비어 형상이 없는 것이 진짜 부처라는 사실은 모두들 알고 있을 터, 경전이나 불상은 필요없지 않느냐’고 재차 다그쳤습니다. 이에 혜원스님은 다시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고 합니다.

“경전과 불상이 오기 전인 한(漢)나라 명제(明帝) 이전에는 이 땅의 중생들이 ‘허공이 진짜 부처다’는 사실을 왜 몰랐습니까. 경전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아도 스스로 법을 알 수 있다면 문자가 없던 삼황(三皇)이전 사람들도 삼강오륜(三綱五論) 등의 법을 스스로 알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때 사람들은 금수(禽獸)처럼 어머니만 알고 아버지는 몰랐습니까? 만약 ‘형상에는 마음이 없으니 섬겨도 복을 줄 리 없다. 따라서 폐지해야 한다’고 하신다면 나라의 7묘(廟)에 모신 형상들은 무엇입니까. 거기에 무슨 마음이 있다고 쓸데없이 받들고 섬기는 것입니까...(중략)...폐하는 지금 왕의 권세를 믿고 제 마음대로 삼보(三寶)를 파멸시키고 있으니, 곧 나쁜 견해를 지닌 사람입니다. 아비지옥에서는 귀천을 따지지 않습니다. 폐하라고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혜원스님의 목숨을 건 반박에 무제는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혜원스님은 오히려 큰소리로 황제의 잘못을 꾸짖기까지 하였습니다.

혜원스님의 답변에서 우리는 불상을 모시고, 절을 하며, 경전을 배우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부처님의 참모습이 형상과 언어를 떠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눈과 귀가 달린 중생으로서는 경전을 의지하여야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으며, 불상에 절을 하고 예배함으로써 번뇌미망의 몸과 마음속에 감추어진 참된 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생들 저마다 타고난 근기가 다른 까닭에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영원히 미망에 허덕이는 이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 모두를 구제하고자 하는 대승의 보살심이 불상이라는 형상과 경전이라는 말씀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방편은 진리에 대한 확신이 전제
  따라서 방편이란 어떤 가르침에 대하여 그것이 100%의 진리라는 믿음을 전제해야 합니다. 만약 2층이라는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이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은 그저 방편, 즉 수단이라 치부해 버리고 2층이 아니니 밟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는 결코 2층이라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첫 계단이 2층이라는 100%의 믿음으로 밟고 올라간 뒤에, 다시 그 다음 층계를 밟아가는 사람은 자신이 밟는 마지막 계단이 더 이상 방편이 아니라 2층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상은 더 이상 수단이나 방편이 아닙니다. 불상을 그저 돌이나 나무, 석고라고 치부하면서 부처는 마음속에 있다고 말로만 떠드는 사람들은 결코 부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러한 사람이 부처님이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철저하게 믿고 있으며, 진실로 부처님의 행(行)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불교가 불상을 모시고 공경하는 이유는 그 분을 그저 우상으로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남기신 가르침을 믿고 실천함으로써 그 분을 닮아가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배우고,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 눈앞의 부처님을 따뜻한 온기가 도는 진짜 살아계신 분이라 믿고, 지극한 신심으로 받들어 모실 줄 아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돌부처가 참불(眞佛)이 둘이 아닌 이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성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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