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1/14

이여진화

이 가르침으로행복을 성취하라

  멀고 먼 곳, 5백 유순이나 되는 거리에 인적도 없는 아득한 곳에 보물 산이 있었다. 그곳은 너무 멀고 험난하고 미로가 많아서 보물 산을 차지는 하고 싶지만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 때에 한 사람의 훌륭한 안내자가 나타났다. 그는 많은 대중들을 이끌고 보물 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몸이 약한 사람도 있고 오랜 여행이어서 모두들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우리는 모두 극도로 지치고 매우 두렵기도 하오. 이젠 한 발짝도 더 갈 힘도 없소.”
  하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이었다.
  그때 안내자는 멀지않은 곳에 아름답고 풍요로운 환상의 성(化城)을 만들어 놓고 대중들을 격려하였다.
  “여러분, 저기 휘황찬란한 성이 보이지 않소. 저기 가서 맘껏 즐기고 온천욕도 하고 먹을 것도 실컷 먹도록 합시다.”
  대중들은 환상의 성인지도 모르고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앞 다투어 성 안으로 달려갔다. 이들이 지쳤던 몸이 풀리고 기력이 회복된 것을 확인한 노련한 안내자는 다시 신통력으로 환상의 성을 사라지게 하였다.
  “보물 산은 이제 멀지 않소. 기운을 내서 다시 떠납시다.”
  이렇게 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여 결국 모든 대중이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무사히 보물 산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비유는 《법화경》 화성유품에 나오는 내용이다. 물론 안내자는 부처님이다.
  여기서 멀고 먼 험난한 5백유순의 거리는 바로 우리네 인간 세상의 괴로움의 바다(苦海)를 의미한다. 보물 산이라고 하는 행복의 세계를 가는데 이를 방해하는 우리의 탐욕과 분노심 그리고 어리석음이라는 장애물이 행복의 세계에 가는데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행복의 성취를 방해하는 마구니들인 것이다.
탐진치라고 하는 삼독 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곧 마구니의 편에 서는 것이다.
  불교의 초기경전인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모든 이에게 “행복보다 소중한 성취는 없다”고 말씀하시었다. 부처님께서는 불행하거나 괴롭지 않은 행복의 길을 끊임없이 모색했던 길이었다. 결국 부처님이 되었다는 것은 완전한 행복의 길을 찾으신 것을 말한다.
  부처님은 《전법륜경》에서 행복의 길을 찾았음을 선포하고 제자들에게 행복의 길을 전하라고 하신 것이 바로 전도선언인 것이다.
  “불자들이여! 먼 길을 떠나라. 신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떠나라. 처음도 중간도 끝도 훌륭한 가르침을 널리 전하라.”
  부처님은 전도야 말로 행복의 길을 전해주는 것임을 명확하게 하시고 있다.
  불교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안락하고 행복을 성취하고 더 나아가 다른 이에게도 바른 법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도 결국 ‘너 자신을 자각하고 이웃을 이익 되게 하라’는 말이라 하겠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밝음의 길이다. 참된 길이다. 플러스의 길이요, 행복의 길이다. 성공의 길이요, 희망의 길이다. 곧 남는 장사인 흑자 인생의 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지는 길은 행복의 길을 등지는 깜깜한 어둠의 길이다. 고통스런 가시밭길이다. 마이너스의 길이요, 불행의 길이다. 실패의 길이요, 절망의 길이다. 손해 보는 적자인생의 길인 것이다.
  부처님이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하여 가르침을 널리 전하라는 깊은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는 행복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이 가르침을 등지는 자는 불행의 길을 가는 자다. 행복의 길로 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랑스러운 불자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지는 불행의 길로 가는 마구니의 편에 설 것인가?
  《법화경》에서는 행복과 깨달음의 길을 가는 방법으로 오종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수지(受持), 독(讀), 송(誦), 해설(解說), 서사(書寫)를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녀라(수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읽어라(독).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워라(송).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라(해설).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겨라(서사). 이들에게 소중한 행복의 성취가 이뤄지리라.

  나무 삿 다르마 푼다리카 수우트라




20기 공부. 영산회상 편집을 맡고 있음





Prev  불교계 사보의 신기원 감격스럽나이다. 이여진화 2016/12/27 118
Next
 행복한 만남 불행한 만남
이여진화 2016/12/27 118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Rope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