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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진화

함게 생각하는 행복과 연기

  나는 일을 적게 하고 돈을 많이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 일을 많이 하고 돈을 적게 가져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누군가를 부리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누군가 내 밑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아닐까? 부하가 없는데 장군이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밑에 사람이 없는데 권력자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위에서 편하게 있으면 누군가 밑에서 고생하며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존경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다수의 성공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일반적으로는 일을 적게 하고 돈은 많이 벌고, 남을 부리고 존경도 받는 일이다. 이는 결국 전혀 반대의 상황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나로 인해 일은 많이 하고 돈은 적게 가져가고, 또 내 밑에서 나를 위하여 심부름을 하거나 일을 해주고, 나를 우러러 봐주고 있어야만 성립된다는 것이다.
한편 내가 잘 났다고 과시하면, 또 다른 편에서는 못났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함께 생각해보면 나의 행복과 성공은 다른 사람의 고통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요즘 한반도의 심각한 핵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 4월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 문제로 텔레비전 채널마다 전망이나 평가로 마치 대한민국에 국회의원 선거만 존재하는 듯하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의원에 당선이 된다면 본인은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이 기쁨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많은 사람이 낙선으로 인하여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남을 이겨야 내가 살고, 내가 성공하고, 내가 행복하다는 것이다.
  내 자식이 학급에서 15등 하다가 5등이 됐다면 당연히 기쁜 일이다. 하지만 내 아이의 성적이 올라갔다는 것은 누군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내 기쁨은 누군가의 아픔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만 생각한다면 간단한 문제다. 하지만 함께 생각한다면 이렇게 우리는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행복이 남에게 고통을 주며 얻어질 수도 있는 행복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이세계의 갈등과 시비는 서로 주고받는 핑퐁게임과 같은 것이어서 괴로움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네 행복이 타인의 고통을 딛고 그 위에 쌓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피라미드와 같은, 삼각형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제일 밑바닥에 가면 만원어치의 일을 하고 백 원을 가져가고, 꼭대기로 가면 만원어치 일하고 십억 원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도 그렇다. 피라미드 하부의 벽돌을 빼서 위로 올려놓으면 위의 것이 하나 내려올 것이다. 나만 기어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내가 고통을 해결하고 출세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고통을 전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밑에서는 그 숫자가 많다 보니까 보이지 않지만,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그 수가 적기 때문에 더 올라서려면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밟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제일 정점은 하나이기 때문에 부자나 형제간에도 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최고 권력자가 되거나 재벌 총수가 되기 위해서는 부자간에도 부부간에도 종종 모략과 투쟁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위에 있는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밑에 있는 우리네 대다수의 마음도 사실은 다를 바 없다.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를 갖기 위하여 끈임없이 욕심을 부리고 있다. 단지 약간 작은 욕심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도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우리의 욕심도 증폭되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나의 행복을 위하여 상대를 짓밟고 싸우고 대립하고 이겨야만 하는 것인가? 여기 부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들어보자.
《잡아함경》 권 15에,
차유고 피유(此有故 彼有)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차기고 피기(此起故 彼起)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차무고 피무(此無故 彼無)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차멸고 피멸(此滅故 彼滅)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만물의 인과관계와 상호연관성을 강조하신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사물이든 예외가 없이 서로 연관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원인과 결과의 법칙인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잡아함경》 제12권 〈연기법경(緣起法經)〉에서 연기법은 자신이나 다른 깨달은 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여래가 세상에 오셨든  아니 오셨던 것과 관계없이 우주(법계)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보편적인 법칙임을 설하고 있다.
  나의 행복은 결국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고 있는 혜택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내가 그들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화두는 상생이고 화합이다. 상생과 화합은 나의 몫을 이웃과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가능한 것이다.

나무 삿 다르마 푼다리카 수우트라










20기 공부. 영산회상 편집을 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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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진화 2016/12/27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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