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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주스님

복 많이 받으세요


  참 좋은 말이다. 새해가 되면 흔히 주고받는 덕담이다. 행복해 지고자하는 소박한 마음을 주고받는 말이다. 그런데 누구나 갈망하는 행복은 과연 어떤 것일까.
  행복은 추상적이어서 행복의 기준은 사람 따라 상황 따라 다양하게 인식되는 것이다. 행복을 수치로 환산한 행복지수는 일상에서 긍정적 감정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지를 따지는 긍정경험 지수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한다.
  2014년 유엔에서 발표한 긍정경험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9점으로 143개국 중 118위로 발표된 바 있다.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문항의 내용은 “나날의 생활에서 즐거운 일이 많았는가? 많이 웃었는가? 편히 쉬었는가? 존중을 받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토대로 만든‘긍정경험 지수’에서 한국인은 최하위 그룹에 속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인은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행복(幸福)은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또 복이란, 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큰 행복으로서 어떤 대상으로 인하여 만족과 기쁨이 많음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인간의 행복을 오복(五福)으로 말하기도 한다. 오복에 대한 기준도 다양하다. 하지만 오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마도 《서경(書經)》의 <홍범(洪範)>편에 나오는 것이 처음일 것이다. 서경에서는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제시하고 있다.
  수는 장수하는 것, 부는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것, 강녕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 유호덕은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선행과 덕을 쌓기를 좋아하는 것, 고종명은 제 명대로 편히 살다가 잘 죽는 것을 말한다. 그밖에도 오복에 대한 기준은 다양하다.
  요즘 온 나라를 뿌리채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게이트 와중에 터져나온 최순실씨 딸의 “돈도 실력이다. 너희들의 부모를 원망해”라고 SNS를 통해서 알려진 발언 때문에 많은 논란과 분노를 일으켰다. 소위 부모가 가진 돈이나 지위에 따라서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또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기도 한다는 부모덕이나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처복, 친구복, 자식복, 남편복 등의 다양한 인복(人福)도 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복들이 있어야 행복하다면, 최연장자가 가장 행복해야 되고,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또는 신체 건강한 사람이 가장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어떤 대상과의 관계성이나 조건에 따라서 생겨난 것은 조건이 사라지면 없어지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연기(緣起)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행복하고, 누구 때문에 행복하다는 조건부 행복은 조건 따라 사라지는 무상한 것이다.
  둘째, 행복감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대상에 따라 변하는 무상한 마음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는 없다. 설사 선업을 통해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아직 번뇌가 남아있는 복이다. 이것을 ‘유루복(有漏福)’이라고 한다. 조건 지어진 모든 것은 무상하고 공하다는 것을 철저히 아는 반야지혜의 마음이라야 항상 즐거움(常樂)을 누릴 수 있다. 이는 모든 번뇌의 불이 완전히 꺼진 상태로서 열반락의 무루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국 유루복도 복은 복이지만 조건에 따라서 언제든지 불행이 올 수 있는 복이다. 우리가 흔히 추구하는 복이 바로 이런 복이다. 결국 완전한 행복인 무루복을 갖기 위해서는 반야의 지혜를 성취할 때 가능한 것이다.
  보제존자 나옹화상(1320~1376년)은 인도의 지공화상의 제자이며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스승이었던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한 고승이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매일 새벽과 저녁예불 때 부처님전에서 축원을 하는데 이때 하는 축원문이 나옹스님이 지은 행선축원이다. 그 행선축원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이름 듣는 이는 삼악도를 벗어나고  聞我名者免三途
  나의 모습 보는 이는 해탈을 얻어 지이다.  見我形者得解脫
  이와 같이 교화하기를 영원토록 계속하여   如是敎化恒沙劫
  필경에는 부처이니 중생이니 하는 말도 없어 지이다.  畢竟無佛及衆生

  나무 삿 다르마 푼다리카 수우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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